지난 7/17 (수) 저녁 6:30, 순천 저전나눔터에서 ‘탈석탄 탈핵발전소, 탈탈기후영화제’가 열렸습니다.
이번 2024년 탈탈기후영화제는 7, 8, 9월 총 세 달 동안 매월 1편의 기후 관련 영화를 선정해 공동체 상영회를 여는 것으로 기획했습니다.
7월의 영화는 임기웅 감독님의 <문명의 끝에서>입니다.
우리가 매일 배출하는 쓰레기는 어디로 가는지, 쓰레기의 경로에 집중하면서 영화는 그 쓰레기를 ‘업’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과의 조우를 기록해 보여주기도 합니다.
매일 배출하지만, 우리는 쓰레기 문제를 묻어둔 채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정용 쓰레기는 물론이고, 이보다 훨씬 더 큰 비율로 폐기되는 산업용 폐기물과 건설 폐기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쓰레기는 더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지구 생태계 내에서, 쓰레기는 너무나 오랫동안 외부화되어 왔습니다.
영화에서 1부는 수도권 쓰레기 매립지였던 난지도에서 시작해, 해양 쓰레기까지 보여줍니다.
해양 생태계에 대해 영화가 자세히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어민이 끌어올린 그물 속이 온통 쓰레기였던 장면은 지금이 ‘문명의 끝’임을 절로 수긍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정화해주고 있을 거라는 순진한 착각 속에 있다가, 그 바다 속 참담한 실상을 가시적으로 맞닥뜨리니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무슨 짓을 저지르고 살아온 걸까요.
2부에서는 쓰레기를 ‘예술’과 연결하거나, 민주주의의 문제와 연결하는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쓸모가 없어지면 우리는 버립니다. 그렇게 쓰레기는, 우리의 수단이었던 상품이 더이상 상품의 기능을 하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우리 사회에서 예술의 존재론이 바로 쓰레기 존재론과 겹쳐지는 자리를 2부에서는 포착하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쓸모 없는 사람들, 도시를 욕망하거나 성공을 욕망하는 사람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삶을 안정적으로 꾸리기를 원하는 사람들.
우리는 성공하기를 바라는 욕망을 은밀히 주입받습니다. 물론 영화가 정확히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지금의 지리멸렬한 삶에서 벗어나게 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지워지고, 밖으로 내몰리며,
삶의 지리멸렬함을 기약없이 지속해야합니다.
함께 지금 잘 살자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을 ‘재개발’ 도시라는 은유적이자 매우 현실적인 공간성을 바탕으로 영화는 보여줍니다.
우리는 우리의 다양한 삶을, 손때 묻은 삶을 상실합니다.
영화의 2부는, 쓸모를 증명하지 않으면 내가 ‘쓰레기’로 인식되는 사회적 존재인식 방식과 실제로 양산되는 ‘쓰레기’를 보이지 않는 메타포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도시화를 열망하며 살아온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쓰레기일까요. 내가 지키고 싶은 삶과 사회는 나로서는 품어안지 못할 만큼 거대한데요.
여기서 우리는 실제 눈앞에 보이는 ‘쓰레기’ 문제로 되돌아와 답답하리만큼 문제해결 방법을 찾기 어렵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됩니다.
순천은 쓰레기 처리장 건립 문제로 갈등이 있어온 곳입니다. 건설이 예정되어 있기는 하나, 여론은 여전히 첨예하게 대립 중 입니다.
영화에서는 이제 우리가 더 이상 외부화할 수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말하는 것으로 시작했었는데요.
한 시민은 “이 영화를 시장이 봤으면 좋겠다”라고 힘주어 말씀주셨어요. 한편으로는 쓰레기 문제를 자체적으로 해결하자는 공론화가 성공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고 하더라도 쓰레기로 인한 오염물질의 배출 문제는 또 다른 해법이 필요한 점에 대해서도 언급해주셔서, 쉽지 않은 현안이라는 게 피부로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
먼 곳에서 달려와주신 임기웅 감독님, 그리고 시민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해결을 향해 이 영화가 모든 답을 주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잃은 것들 앞에서 애도하고 커다란 쓰레기라는 참상 앞에서 다시금 현재의 상황을 바로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달 8월에는 <고래와 나> (8/14, 용강도서관 마로극장)로 찾아뵙겠습니다.